
2021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를 뒤늦게 봤다.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지만 계속 미루다가, 최근 서인국이 출연한 다른 드라마를 본 뒤 다시 로맨스 작품이 궁금해져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깊게 빠져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26년 여름에 만난 나의 인생 드라마다.
16부작이라 중간에 조금 늘어진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초월적 존재와 인간의 계약이라는 판타지 설정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래도 내게는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 아래에는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전체 줄거리와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기본 정보
- 방송사: tvN
- 방영 기간: 2021년 5월 10일~6월 29일
- 총 16부작
- 장르: 판타지, 로맨스, 휴먼
- 연출: 권영일
- 극본: 임메아리
- 주요 출연: 박보영, 서인국, 이수혁, 강태오, 신도현
이 드라마는 사라지는 모든 것의 이유가 되는 존재 ‘멸망’과, 죽음을 앞두고 그와 계약한 인간 ‘탁동경’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 로맨스다.
주요 등장인물
탁동경|박보영
6년 차 웹소설 편집자다.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이어가던 중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약 100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멸망|서인국
인간도 신도 아닌 초월적 존재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모든 것에 관여하며, 동경이 술에 취해 내뱉은 소원을 듣고 그녀의 현관문을 두드린다.
차주익|이수혁
동경이 근무하는 웹소설 회사의 편집팀장이다.
과거 나지나와 우연한 인연이 있었고, 이현규와는 과외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난 사이이기도 하다.
나지나|신도현
웹소설 작가이자 동경의 친한 언니다.
오랫동안 첫사랑 이현규를 잊지 못했지만, 차주익과 가까워지며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다.
이현규|강태오
나지나의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다.
과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지나의 곁을 떠났고,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녀와 마주한다.
탁동경은 왜 멸망과 계약했을까?
탁동경은 병원에서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고 약 100일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통보받았지만 회사와 가족 앞에서는 쉽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지 못한다.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신 동경은 세상이 전부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소리친다.
그 소원을 들은 존재가 바로 멸망이다.
멸망은 동경에게 남은 기간 동안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원하는 소원 하나도 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대가로 동경은 죽기 전에 세상의 멸망을 소원으로 빌어야 한다.
하지만 계약에는 잔인한 조건이 있다.
동경이 끝까지 세상의 멸망을 빌지 않으면,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대신 죽게 된다.
동경은 왜 멸망을 사랑하려 했을까?
동경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대신 죽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
그래서 차라리 멸망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만들기로 한다. 자신이 죽을 때 멸망이 대신 사라지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목적을 위해 시작한 관계였다.
멸망은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고, 동경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를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의 외로움과 상처를 이해하게 된다.
결국 동경의 계획은 진짜 사랑이 되어버린다.
처음에는 사라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멸망을, 이제는 자신을 위해 희생시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왜 서로를 잊었을까?
멸망을 만든 소녀신은 동경에게 선택지를 제안한다.
두 사람이 계약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면,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경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동경과 멸망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지만,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이상하게 서로에게 이끌린다. 결국 두 사람은 다시 같은 선택을 하고, 잃었던 기억도 되찾는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두 사람의 마음은 다시 서로에게 향했다.
이 과정은 둘의 사랑이 단순히 계약이나 기억 때문에 생긴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멸망 결말|멸망은 정말 죽었을까?
결말에서 멸망은 동경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멸망은 자신이 결국 동경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라며, 그녀 대신 소멸하는 길을 선택한다.
멸망이 사라진 뒤 동경의 병은 치료된다.
동경은 멸망을 잊지 못하고 계속 그리워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의 곁에서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슬픔 속에서도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멸망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멸망은 어떻게 사람이 되었나?
멸망은 소녀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다.
정원에서 멸망은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존재로 남는다. 나비와 같았던 멸망은 죽음을 통해 꽃으로 피어나고, 마침내 인간이 될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멸망은 진짜 사람이 되어 동경 앞에 다시 나타난다.
동경이 그에게 지어준 이름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멸망은 응급실 의사가 된다. 과거에는 죽음과 소멸을 불러오는 존재였지만, 인간이 된 뒤에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멸망이 의사가 된 설정은 그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탁동경과 멸망은 해피엔딩일까?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인간이 된 멸망은 더 이상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동경과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은 평범한 연인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미래를 약속한다.
동경 역시 차주익이 새롭게 시작한 회사에서 계속 편집자로 일한다.
죽음만 기다리던 동경은 자신의 삶을 되찾았고, 영원히 살아야 했던 멸망은 유한한 인간의 삶을 얻었다.
동경은 살아남았고, 멸망은 사람이 되었다.
나지나는 이현규와 차주익 중 누구를 선택했을까?
나지나는 첫사랑 이현규가 아닌 차주익을 선택한다.
지나와 현규는 고등학교 시절 서로 좋아했지만, 현규가 유학을 떠나는 과정에서 제대로 마음을 설명하지 못하며 헤어졌다.
현규는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지나의 연락을 피했고, 지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오랫동안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웹소설 작가가 된 뒤에도 첫사랑의 기억을 작품에 반복해서 담는다.
차주익은 과거 현규의 과외 선생님이었다. 비 오는 날 현규를 기다리던 지나에게 그만 기다리라고 말하며 키스했던 사람도 주익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현규와 지나는 과거의 오해를 풀지만, 이미 두 사람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지나는 추억 속 첫사랑 대신 현재의 자신을 바라봐 주는 차주익을 선택한다. 이후 주익을 새로운 남자 주인공으로 삼아 웹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뒤늦게 인생 드라마를 만난 후기
이 작품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멸망이라는 존재의 능력이 워낙 강하다. 순간이동을 하고, 기억을 지우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서로 다른 얼굴로 보이기도 한다. 판타지 설정을 현실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쉽게 몰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16부작이라 중간 전개가 늘어진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내게는 그 판타지가 오히려 이 작품만의 재미였다.
아까워서 마지막 회를 바로 보지 못하고 며칠 미뤘을 정도로, 동경과 멸망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특히 이 드라마를 보며 계속 생각하게 된 것은 탁동경의 일이었다.
동경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쉽게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회사를 다니나 싶었는데, 나중에 자신이 사실 일을 좋아했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시한부가 된다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했다고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아닐 것 같지만.
내게 100일만 남는다면 무엇을 할까?
동경의 상황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내게 남은 시간이 약 100일뿐이라면 무슨 소원을 빌까. 무엇을 하고 싶고, 누구를 만나고 싶을까.
평소에는 돈을 더 벌 방법과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고민한다.
하지만 살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면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 건강,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일이 아닐까.
요즘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자주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내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됐다.
직접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작품을 보고 감상을 쓰거나 내용을 정리하는 일은 즐겁다. 그래서 탁동경이 하는 웹소설 편집자의 일도 전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보였다.
드라마 한 편을 보며 내 삶과 일까지 돌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박보영과 서인국의 로맨스
박보영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죽음을 앞둔 인물의 두려움과 체념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걱정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 무너지는 탁동경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서인국은 이 작품에서 특히 매력적으로 나온다.
무심하고 냉정한 초월적 존재로 시작하지만, 동경을 사랑하면서 조금씩 인간적인 감정을 배워가는 변화가 잘 어울렸다. 장르물도 잘하지만,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서인국의 로맨스 연기를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배우의 분위기와 대사 호흡도 이 드라마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수혁의 차주익
이수혁 역시 차주익이라는 캐릭터와 잘 어울렸다.
차갑고 쉽게 속을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지만, 지나를 대할 때는 오랫동안 그녀를 지켜봐 온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서인국과 이수혁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가진 배우라 한 작품에 함께 등장했을 때 각자의 존재감이 살아났다.
기억에 남은 OST
가장 기억에 남은 OST는 거미의 〈I Wanna Be With You〉였다.
드라마를 다 본 뒤에도 계속 생각날 만큼 동경과 멸망의 감정과 잘 어울렸다. 음악이 나올 때마다 두 사람의 이별과 재회 장면이 떠올라 다시 울컥하게 된다.
좋은 드라마에는 역시 오래 남는 OST가 있다.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총평
평점: ★★★★★ 5/5
누군가에게는 설정이 과하고 전개가 느린 판타지 로맨스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동경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이 사랑했던 삶을 발견한다. 멸망은 영원히 존재하면서도 삶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유한한 인간이 된 뒤 비로소 영원을 느낀다.
가족, 친구, 사랑, 건강, 그리고 좋아하는 일.
결국 행복을 이루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방영된 지 5년이나 지난 뒤에 봤지만, 2026년 여름의 인생 드라마는 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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