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이 나온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던 ENA 드라마 <나의 해리에게>.
처음 몇 화를 봤을 때부터 이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다.
실종된 동생, 해리성 정체성 장애, 8년을 사귀고 헤어진 전 연인, 또 다른 인격이 시작한 새로운 사랑, 방송국 이야기까지 소재만 놓고 보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들어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만하지 않았다.
대사도 좋고 장면 전환도 감각적이었고, 무엇보다 주은호와 주혜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표현한 신혜선의 연기가 강했다.
중간에는 정현오 말고 강주연이랑 잘됐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밀기도 했다ㅋㅋ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니 왜 결국 은호가 현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됐다.
<나의 해리에게>는 단순히 누구와 이어지는지를 보는 로맨스라기보다, 상실과 외로움 속에서 무너진 한 사람이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 아래부터는 <나의 해리에게> 전체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해리에게 기본정보
- 방송: ENA
- 방송기간: 2024년 9월 23일 ~ 10월 29일
- 총 12부작
- 장르: 로맨스, 멜로, 휴머니즘, 가족, 심리, 오피스
- 출연: 신혜선, 이진욱, 강훈, 조혜주, 강상준 외
- 주은호·주혜리: 신혜선
- 정현오: 이진욱
- 강주연: 강훈
- 백혜연: 조혜주
- 극본: 한가람
- 연출: 정지현, 허석원
나의 해리에게 줄거리
실종된 동생 주혜리를 품고 살아온 주은호
주은호에게는 자신을 무척 따르던 여동생 주혜리가 있었다.
하지만 혜리는 졸업여행을 떠났다가 실종됐고 결국 사망 처리된다.
특히 여행을 가기 싫어했던 혜리에게 자신이 계속 다녀오라고 권했다는 기억 때문에 은호는 오랫동안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은호의 현실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PPS 아나운서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8년 동안 사귀었던 같은 방송국 아나운서 정현오와도 헤어진 지 4년째다.
두 사람이 헤어진 가장 큰 이유는 결혼 문제였다.
은호는 현오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현오는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오랜 연애가 끝났다.
헤어진 뒤에도 같은 직장에서 계속 마주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다.
오전에는 PPS 아나운서 주은호, 오후에는 주차관리소 주혜리
그러던 어느 날 은호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고 일어나면 몸에 알 수 없는 상처가 생겨 있고, 기억이 끊기는 일이 반복되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혜리라는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혜리라는 이름은 실종된 동생의 이름이다.
은호는 오전에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 PPS 아나운서 주은호로 출근한다.
반면 오후가 되면 또 다른 인격인 주혜리가 나타나 미디어N서울 주차관리소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다.
그러니까 은호가 아나운서 일을 관두고 주차장 일을 시작한 게 아니다.
같은 몸으로 오전과 오후에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은호는 계속되는 실패와 상실 때문에 까칠하고 부정적인 편이지만, 혜리는 솔직하고 긍정적이다.
그리고 혜리는 자신이 일하는 미디어N서울의 아나운서 강주연을 좋아하게 된다.
주혜리와 강주연의 사랑
강주연 역시 가족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다.
원래 군인을 꿈꿨지만 자신의 임관식에 참석한 뒤 형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이후 형의 꿈을 대신 이어가기 위해 아나운서가 됐다.
자기 사람에게는 다정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무뚝뚝하고, 별다른 즐거움 없이 살아가던 인물이다.
그런 주연 앞에 앞머리를 잔뜩 내린 채 거침없이 다가오는 혜리가 나타난다.
주연은 처음에는 혜리를 이상하게 여기지만 점점 그녀 때문에 웃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혜리 역시 주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자신이 은호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느끼면서, 은호에게 몸을 양보해 달라는 편지까지 남긴다.
한 몸 안에서 은호에게는 현오가 있고, 혜리에게는 주연이 생기면서 두 사람의 삶은 점점 복잡하게 얽힌다.
다시 가까워지는 은호와 현오
한편 은호와 현오의 감정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은호는 현오와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실종된 가족과 관련된 사연을 접하고 과호흡을 일으킨다.
현오가 은호를 안고 진정시키고, 이후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키스까지 한다.
헤어진 지 4년이나 됐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러나 현오는 계속 은호를 사랑하면서도 결혼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진다.
현오는 왜 결혼을 거부했나
현오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와 집을 떠난 어머니 때문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갈 곳이 없던 현오를 데려다 키운 사람들은 미자할매를 비롯한 할매 5자매였다.
현오는 자신을 가족처럼 키워준 이들을 계속 돌보며 살아왔다.
자신은 그런 삶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결혼하면 아내까지 자신의 가족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은호에게 자신의 짐을 지우기 싫어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걸 은호와 함께 고민한 게 아니라 혼자 결정했다는 것이다.
은호 입장에서는 이유도 제대로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셈이었다.
현오가 결혼한다는 소문과 무너지는 은호
그러던 중 현오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퍼진다.
자신과는 결혼할 수 없다며 헤어진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은호는 크게 충격받는다.
방송에서도 실수하고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도 연이어 빠지게 되면서 상실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결국 은호는 휴가를 몰아쓰고 갑자기 사라진다.
혜리를 찾고 있던 주연은 현오를 찾아가 은호가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현오가 은호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사실부터 신경 쓰자, 주연은 은호가 아프다는 것보다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게 더 중요하냐는 취지로 일침을 날린다.
그 말을 듣고서야 현오도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은호는 동생 혜리가 사라졌던 숲으로 들어가 혼자 지내고 있었고, 결국 현오가 은호를 찾아 데리고 돌아온다.
나의 해리에게 결말
주은호와 정현오는 결국 재결합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은호와 정현오는 다시 만난다.
은호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 아나운서 일을 시작하고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혜리로 살던 동안 사랑했던 강주연과도 제대로 관계를 정리한다.
은호에게는 직접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이지만, 주연에게 혜리는 분명히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혜리가 사라졌으니 끝이라고 넘기지 않고 주연과 좋은 이별을 한다.
강주연은 누구와 이어지나
강주연은 은호와 이어지지 않는다.
주연이 사랑한 사람은 어디까지나 혜리였고, 혜리는 은호의 또 다른 인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주연에게는 자신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백혜연의 이야기가 남는다.
혜연은 주연에게 마음을 표현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PPS로 이직하고 주연을 차단한다.
그런데 막상 혜연이 사라지고 나자 주연이 그녀의 빈자리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가능성을 남긴 열린 결말로 끝난다.
현오의 청혼으로 끝나는 해피엔딩
현오 역시 조금씩 달라진다.
은호를 자신의 가족들에게 데려가고, 결혼을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은호는 현오의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후 은호는 상담을 통해 혜리로 살던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함께 모인 자리에서 현오가 은호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한다.
8년 동안 사랑했고 4년이나 헤어져 있었던 두 사람은 결국 다시 서로를 선택하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나의 해리에게 후기
처음부터 끝까지 소재가 정말 좋았다
처음 몇 화만 봤을 때도 가장 먼저 느낀 건 소재가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실종된 동생과 그 동생의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인격.
8년이나 사귀고 헤어진 전 남자친구.
같은 회사라 헤어지고도 계속 마주치는 두 사람.
그리고 또 다른 인격이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 아나운서들의 방송국 이야기와 가족의 상처까지 들어간다.
잘못하면 엄청 산만해질 수 있는 설정인데 이상하게 하나씩 연결됐다.
처음에는 이런 소재를 대체 어떻게 풀려고 하나 싶었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왜 은호에게 혜리라는 인격이 필요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혜리는 은호가 원했던 행복한 자신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 드라마에서 혜리를 단순히 ‘또 다른 인격’으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은호는 동생을 잃은 죄책감을 안고 살았고, 아나운서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계속 실패했다.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과도 헤어졌다.
반면 혜리는 실패의 기억이 거의 없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긍정적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다고 말하고, 웃고 싶으면 웃는다.
그래서 은호가 점점 무너질수록 혜리의 존재가 강해진다.
어쩌면 혜리는 은호가 살고 싶었지만 살지 못했던 삶이자, 은호가 잃어버렸던 행복한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계속되는 좌절과 상실 속에서 혜리의 자아가 점점 강해졌다는 후반부 설정도 이 해석과 잘 맞았다.
현오와의 재결합은 싫었는데 결국 납득됐다
나는 원래 재결합 로맨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중간에는 주연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현오 만나지 마!!! 그냥 주연이랑 잘돼!!!”
이쪽이었다ㅋㅋ
현오는 은호를 사랑하면서도 자기 혼자 생각하고, 자기 혼자 결론 내리고, 자기 혼자 헤어졌다.
자신의 사정 때문에 은호까지 힘들어질까 봐 그랬다는 건 이해하지만, 은호에게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답답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현오가 혼자 짐을 지려고 하던 태도에서 조금 벗어나고, 은호 역시 현오의 가족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둘 사이에 있던 가장 큰 불안 요소가 사라진 뒤 다시 만나는 모습이라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또
‘그래, 둘이 잘됐으면 됐다ㅠㅠ’
싶었다.
처음에는 재결합 반대였지만 결말까지 보고 나니 이 선택은 납득됐다.
강주연은 정말 아까운 서브남주였다
그리고 강훈.
이 드라마에서 정말 좋았다.
혜리를 만나기 전에는 무미건조하고 타인에게 관심도 별로 없던 강주연이 점점 변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혜리를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게 나와서 서브남주를 이렇게 열심히 응원한 것도 오랜만이었다ㅠㅠ
그래서 결말이 더 아쉬웠다.
하지만 주연과 잘되려면 은호가 계속 혜리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주연과의 이별은 이 드라마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더 아쉽고, 더 기억에 남는 서브남주였던 것 같다.
신혜선 1인 2역은 역시 믿고 본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할 배우는 당연히 신혜선이다.
은호와 혜리는 얼굴만 같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은호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아나운서지만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날이 서 있고 부정적이다.
반대로 혜리는 어딘가 엉뚱하고 이상하면서도 밝고 솔직하다.
말투, 표정, 움직임이 달라서 화면에 나온 사람이 은호인지 혜리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두 인격을 단순히 ‘밝음 vs 어두움’으로만 나누지 않고 각각의 외로움까지 보여준 게 좋았다.
신혜선은 역시 믿고 보는 배우다.
대사도 좋았지만 연출이 정말 예뻤다
<나의 해리에게>는 대사만 좋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방식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 전환으로 웃기는 장면도 많았다.
반대로 감정적으로 깊게 들어가는 장면은 화면 자체를 아주 예쁘게 담았다.
특히 혜리가 사라진 숲을 비롯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정지현, 허석원 감독의 연출을 보는 재미도 꽤 컸다.
대사, 배우, 연출이 전체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었다.
결국 이 드라마가 말한 건 행복이었다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나의 해리에게>가 결국 무엇을 말하려던 드라마였는지도 보인다.
은호는 성공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원하는 방송을 맡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떠난다.
그래서 자꾸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은호 안에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웃고 사랑할 줄 아는 혜리가 나타난다.
결국 이 드라마가 말하는 행복은 대단한 성공이라기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혼자 남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
계속 경쟁하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실패했다고 느끼기 쉬운 사람들에게 꽤 따뜻한 이야기를 건넨 작품이었다.
한줄평
상실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나를 통해 결국 진짜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 대사, 연기, 연출까지 고르게 좋았던 멜로드라마.
별점: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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